혹자들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두고 항상 똑같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하죠. 흥미로운 캐릭터나 지방색이 물씬한 로케이션, 발가락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괴상한 유머와 개꿈보다 엉뚱한 에피소드는 그의 전매특허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어요.
가령 그는 더 이상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나 <강원도의 힘>(1998)처럼 무시무시한 기운으로 충만한 영화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 수정>(2000)처럼 흑백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극장전>(2005)을 기점으로 그의 영화들은 간단히 말해 밝아졌습니다. 대사는 좀 더 발랄해졌고, 야유에 가깝던 웃음은 한 층 부드러워졌죠. 엉뚱한 상황이 비어져 나오는 것은 여전하지만 이전처럼 비웃음이 관객을 압도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 의도가 그냥 겉으로 보이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하하하>는 역시나 홍상수의 영화답게 술자리로 시작합니다. 통영에 대한 기억을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두 남자, 조문경(김상경)과 방중식(유준상)이 통영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기로 합니다. 막걸리 잔이나 두 남자의 얼굴이 동영상이 아니라 정지된 사진으로 제시됩니다. 내레이션에 나선 조문경이 말해요.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하고 선배 중식을 만났는데 둘 다 얼마 전 통영에 다녀온 것을 알게 됐고, 그 일들을 한 토막씩 얘기하기로 했다고요.
홍상수 감독이 정지된 사진을 이용한 것이나 과거 회상으로 영화를 구성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덕분에 영화는 확연한 형식을 잡고 있습니다. 누군가 얘기를 하면 과거의 이야기가 활동영상으로 이어지고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현재의 문경과 중식이 벌이는 술자리에 대한 정지 사진들이 등장합니다. 내레이션은 간단하게 에피소드에 대한 추임새 정도만을 첨가하고 곧바로 다음의 이야기로 옮겨가는데, 특징이라면 이 추임새라는 것이 어찌나 건성인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이란 점입니다.
<하하하>는 흔히들 말하는 '밝아진 홍상수'의 작품처럼 보입니다. 일단 밝아 보이는 것은 캐릭터예요. 신수가 훤한 조문경은 그간 홍상수의 주인공들을 생각한다면 무척이나 상냥한 편인 데다가 그 흔한 허세마저도 앙증맞은 수준에서 머무르는, 그러니까 전반적으로다가 귀여운 남자입니다. 방중식이나 그의 후배 강정호(김강우)는 전통적인 홍상수식(설명하자면 허세 부리다가 수틀리면 패악부리는) 남성이지만 욕망 때문에 바닥을 드러내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호감이 가는 경우도 있어요(적절하게 발랄한 유머를 구사하지요).
여성 캐릭터들에게선 매력이 느껴집니다. <생활의 발견>(2002)에서 그야말로 외계인의 포스를 풍겼던 예지원은 중식의 애인, 안연주역을 맡아 일편단심 굳건한 사랑을 보여줍니다(조금 실망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조금은 과한 의욕과 솔직한 귀여움이 뒤섞여 있는 통영관광지 문화해설가 왕성옥(문소리)은 가장 돋보입니다. 코미디면 코미디, 로맨스면 로맨스 못 하는 것도 없어요. 게다가 홍상수식의 괴상한 상황 속에서도 경우가 바르고 결단력이 엿보이죠. 이건 홍상수의 영화 속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일입니다. 모든 캐릭터들이 밑바닥을 보이는 것 같지만 영화는 금세 그들을 귀엽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듭니다. 좀 놀라운 부분인데 커플의 웃음과 함께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장면도 있어요(홍상수의 영화 중에 이런 감성이 있었던가요?).
이렇게 좀 더 무난하고 좀 더 덜 피곤한 요소 덕에 <하하하>는 좀 더 많은 관객들을 불러 들이거나, 좀 더 많은 관객들을 흥겹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밝은 기운 만큼이나 은근하게 암시되는 어둠의 징후들에 공명하는 부분이 컸습니다. 결국 모든 결심이 좌절되는 문경의 처지도 그랬습니다만,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중식과 문경의 대화 장면이었습니다.
딱딱한 사진 위에 내레이션으로 소통하는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척만 할 따름이지, 기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상대를 위한 위로나 충고 역시 한낱 추임새에 불과할 뿐, 애정이나 진심이란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아요. <하하하>는 우리 모두가 때때로 귀엽고 사랑스런 존재일 수 있다고 너털웃음을 웃는 척하면서, 결국은 서로의 에고(ego)를 넘지 못해 어리석음과 외로움 주변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고 서늘하게 읊조립니다. 아무리 문경과 중식이 그리고 관객들이 실없이 <하하하> 웃더라도 말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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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잘읽었습니다^^
2010/05/22 15:53근데..문안하다가 아니고..무난하다..입니당!
^^;죄송해요 지적해서 ㅠㅠ
아이고 민망해라. 감사합니다. 반영했어요.
2010/05/23 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