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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7일 폐막한 11회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데일리에 게재된 것으로, 영화제가 시작되기 며칠 전에 이뤄진 서면 인터뷰다. 국제경쟁 부문 출품작 <클래쉬>를 보면서 상 하나는 챙겨갈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넷팩상(아시아 장편 영화 중 최고 작품)을 수상했다. 축하! 당차고 열정적인 필리핀 영화의 기대주 페페 디오크노 감독과 주고받은 대화를 싣는다. 정미래 기자(FILMON)


페페 디오크노

24살의 젊은 필리핀 감독 페페 디오크노의 첫 장편 <클래쉬>는 리차드, 레이몬드 형제의 급박하고 참담한 하루를 통해 범죄와 살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민가 소년들의 절망적인 현실을 고발한다. “2007년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한 조사를 하던 중 자경단 암살대를 피해 약물재활센터에 들어간 십대 형제 두 명을 만났습니다. 이 아이들은 검거로 쫓기는 중에 자수를 했고 센터에서 1년만 보내면 죄를 면하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 아이들은 15세, 17세였고 저는 19세였죠.”
디오크노 감독은 아무런 희망도 가지지 못하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보자 분노가 치밀었다. “형제 중 한명이 ‘우린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죽게 될 거다’라고 말하더군요. 이 경험이 저를 강하게 흔들었습니다. 그때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영화를 찍겠노라 결심했습니다.” 감독은 형제가 재활센터에서 나와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 그들을 따라가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형제의 이름도 알 수 없었고 음성이나 영상조차 기록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이들이 희망을 갖게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문제는 우리의 법이 감옥 내 미성년자에게 매우 엄격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면 무섭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책을 쥐어야 할 손으로 총을 들게 된 소년들이 자경단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암살되는 일이 매일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 디오크노 감독은 분노했다. 이렇게 해서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1시간짜리 영화 <클래쉬>가 탄생했다.

 
<클래쉬>는 충격적일 만큼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필리핀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첫 장편 연출작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어두운 사람이 아닌 내가 이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나는 가족과 친구들,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닫아버렸다. 매우 분노에 찬 부정적인 경험이었고 다시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이었다. 자경단원의 처형은 7,80년대 계엄령 이후로 필리핀에서 실제로 있던 일이다. 우리 사법제도의 불충분한 점 때문에 수많은 필리핀인들이 범죄 문제에 대해 그러한 잔인함을 수용하는 것 같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이야기이지만, 두 형제를 만난 다음부터 나는 이들의 상황을 세계에 알려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밤을 지새우게 한 문제니까. 그래서 장편 데뷔작으로 좋은 작품이 뭘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이 핸드헬드 촬영이며 롱테이크로 이뤄져 있다.
관객들이 긴장과 불안정함, 그리고 급박함을 모두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소형 카메라 작업이었다. 처음엔 글라이딩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스테디캠으로 이틀 정도 촬영을 했지만 이야기의 스타일에는 안 맞는 것 같아서 사용하진 않았다. 촬영감독과 나는 모든 컷을 연결해줄 수 있는 ‘대단한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관객을 영화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고, 우리 자신(카메라 뒤의 힘) 또한 영화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진행 순서는 우리가 실제로 그 지역에 가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찍으면서 카메라가 61분간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조명이 여기에 꼭 필요해? 실제 장소라면 조명 같은 건 없을 텐데”라든지, “카메라를 다른 카메라맨한테 넘겨서 끊어짐 없이 촬영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지 않아?”라는 식으로 논의하며 이야기에 가장 맞는 촬영방식을 찾아갔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미로처럼 생겨서 언제 누구를 마주칠지 모르는 골목이 굉장한 서스펜스를 안겨준다. 골목은 실제 장소인가 아니면 영화를 위해 창조된 공간인가?
처음엔 실제 빈민가에서 촬영을 했는데 카메라 이동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좁은 골목 중간에서는 롱테이크를 할 수가 없다. 학교 가는 아이들, 시장 내외로 음식을 운반하는 사람들과 대치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서 영화제작을 중단하고 세트를 지었다. 처음 빈민가에서의 촬영 계획을 짜기 위해 그 장소의 지도를 만들어서 3D 모델을 만들고 그 지점 구석구석을 비디오로 찍었던 게 세트를 짓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물론 난제는 비용이었다. 무언가 세우는 일은 절대 싸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필리핀 영화는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안 한다. 게다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세트는 거대했다(나중에 주차장 전체를 차지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건물을 헐고 있는 금융지구에서 경주장을 발견해 주차장, 목재, 지붕재를 빌려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총 예산을 미화 2만 달러로 유지했다.

인물의 뒤를 따라가다가 다른 인물이 나타나고, 그 새로운 인물로 카메라가 이동하며 진행되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신을 연결시킨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칭찬 고맙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나는 제작진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사람들이 이 아이들과 하루를 같이 보내보고, 이들을 죽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 답해보길 바랍니다.” 그 때 아이디어 전구에 불이 활짝 들어왔다. 이 인물들과 ‘하루를 보내는’ 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대본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스토리를 구조에 맞추기 위해 능률적으로 짜서 고쳐 쓰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화면 못지않게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특히 골목의 각종 소음들이 생생하게 들린다. 사운드 디자이너인 마크에게 어떤 것을 요구했나?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효과음이 실제 음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대화도 모두 더빙을 했다. 영화의 모든 소리는 후시녹음된 것이다. 음향작업이 영화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마크가 가장 힘든 작업 중 하나를 맡게 됐다. 이렇게 된 실질적 이유는, 영화의 배경은 해변이지만 세트가 금융지구 한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 촬영은 마닐라에서 했지만 영화의 실제 무대는 필리핀 남부로 다른 방언(세부아노어)을 쓰는 곳이어서 마크는 방언도 교체해야 했다. 거기다가 최악의 난제는 작은 디테일이었다. 영화의 80%는 인물들이 걷거나 뛰는 장면이다. 마크의 팀이 발소리 효과음을 녹음하는 데만 한 달 이상을 할애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적인 것일 뿐이고, 창조적인 면에서 마크와 나는 음향에 오래도록 매달렸다. 전체 소리를 무에서 창조하내는 것도 문제지만, 음향과 함께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영화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내내 방송으로 목소리가 나오는 시장(Mayor)이 등장한다. 시장은 영화 속 자경단의 살해 배경을 설명하는 중요한 존재다. 필리핀에서는 일부 지역의 정부가 자경단원들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는 연결고리를 만들되 시장에게 전적으로 손가락질을 하진 않으면서 이 점을 모방해야 했다. 이것을 음향으로 해결했고 그래서 이것이 사운드의 주요 작업이었다. 영화 속 시장의 연설은 실제 현 필리핀 정치인들의 발언에서 문자 그대로를 가져온 것이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노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이것은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가?
꼭 희망이라고 보긴 그렇고, 문화의 일면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쾌활하고 낙천적이다. 어떤 일이든지 웃음으로 이겨낸다. 예를 들어 작년에 폭풍이 필리핀을 덮쳐 마닐라가 물에 잠겼을 때도 가슴 높이의 진흙을 웃으면서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 필리핀인의 이러한 점을 정말 좋아한다. 다만 그 이면에는 회피주의가 내재하고 있다. 우리는 영화에 라디오 클립을 많이 삽입했다. 필리핀에서 라디오를 틀면 미친 사람처럼 웃는 DJ나, ‘좋구나! 좋아 죽겠어!’ 같은 가사가 담긴 신나는 음악이 나온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점에서 어떠한 오류를 보지 못한다. 우리 대다수는 잊는 것만이 상책인 문제들을 많이 안고 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런 필리핀의 성향을 구체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위해 영화에 소리를 입힌 것뿐이다. 바로, 우리가 아무리 웃으며 행복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꿔주진 않는다는 진실 말이다.
 
레이몬드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범죄의 유혹에 빠져든다. 많은 아이들이 갱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바로 내가 영화에서 좀 더 다루지 않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측면이다. 우리가 보여준 것은 레이몬드가 ‘쿨’해지고 싶어 하는 것, 즉 무리의 ‘중심’이 되고자한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좀 더 보여줄 방법을 찾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우리의 공립학교가 얼마나 노쇠한지를 말이다. 학교는 인원이 넘치고, 많은 아이들이 교과서를 가지지 못하고, 먹을 음식과 교통비가 없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속편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슬럼가는 작고 밀도가 높은 커뮤니티라서 집에 머무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폭력배를 만나게 된다. 갱단이 슬럼의 유일한 사교 모임이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거다.

영화 속 부모들은 약물중독자이거나 매춘부이거나 집을 떠났다. 아이들이 나쁜 길로 빠진 이유 중에는 부모의 탓도 있는 것일까?
물론이다. 우리는 가족에 기반을 둔 사회에 살고 있지만 부모가 다른 도시나 외국에서 생계비를 벌어야하고, 극단적인 경우는 범죄에 연루되어 수백만의 가정이 깨진다. 그 손실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만일 엄마가 있었더라면 리차드와 레이몬드 그리고 아버지의 운명이 얼마나 달라질지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적인 문제다. 대다수의 필리핀 부모들은 자식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몸부림친다. 다만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조건이 부모들의 바람과 노력을 꺾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굉장히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특히 후반부 추격 신과 싸움 장면이 강렬하다. 액션 영화를 좋아하나? 어떤 감독에게 영향을 받았나?
고맙다. 나는 액션 영화를 즐겨본다. 영향 받은 감독은 아주 많다!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가 장이모 감독의 <영웅>이다. 이 영화를 지난주에 1백만 번째로 봤다. 물론 이 영화의 미학적인 힘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장이모 감독에게 감탄하는 이유는 그가 작업에 대한 열정과 윤리, 세심함 그리고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추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웅>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한계가 어디까지일까를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아마도 난 장이모 감독과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는 만들지 않을 것 같지만, 장이모 감독 같은 영화 제작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싶다.

영화가 끝난 후 필리핀의 현실에 대한 굉장히 긴 글이 올라간다. 이 것을 통해 관객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정황에 대해서.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무거운 드라마로서 영화를 종결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관객들이 영화관을 나설 때 ‘와, 저게 진짜로 벌어지는 일이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길 바랐다. 덧붙이자면, 거기에 쓴 사실들은 무시하기에는 나에게 있어 너무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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