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뉴 문>이 7억 달러(월드와이드 집계)를 벌어들일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1편 <트와일라잇>의 흥행성적(4억 달러)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젊은 배우들에 대한 10대 소녀들의 열광적인, 하지만 일시적인 관심 탓이라고 일축했다. 더구나 서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 2년차 증후군)라는 것도 있으니까. 제작비의 14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할리퀸 로맨스물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이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도약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남성상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1편<트와일라잇>의 구도는 단출했다. 이렇다 할 특징 없는 여고생 주인공이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피부와 퇴폐적인 매력이 물씬한 뱀파이어 에드워드(로버트 패틴슨)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2편 <뉴 문>은 1편의 남녀 구도에 새로운 남성을 밀어 넣었다. 새롭게 투입된 늑대인간, 제이콥(테일러 로트너)은 모든 면에서 에드워드와는 정반대였다. 에드워드가 성숙해 보였다면 그는 어려 보였고(근육은 반대다), 에드워드가 창백했다면 그는 구릿빛이었으며, 에드워드가 냉정했다면 그는 열정적이었다. 남성의 매력을 유형화하고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덕에 주인공 소녀의 드라마는 한층 더 풍부해졌다. 결국 7억 달러의 힘은 다음의 질문해서 비롯했던 것이다. "쿨 가이 VS 핫 가이,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유주하 기자(FILMON)
<오션스 일레븐>시리즈에서 듀오로 합을 맞춘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는 우리가 상상하는 쿨 가이의 전형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 무심한 척하면서도 완벽하게 통제한 스타일, 출중한 지식과 전문성, 여기에 더해 적절한 엉성함은 덤이다(가령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면서 울다가 들킨다던지). 이들은 침착하고 냉정하며 예민하고 능숙하기에 그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동반한 즐거움이 따른다. 하지만 이들의 연애란 아리송한 신호들로 점철되기 일쑤다. 알 수 없는 운을 띄우거나 갑작스레 분위기를 바꾸는 재주를 보고 있노라면 얼핏 재밌다가도 이내 지치게 마련. 결국은 그 미꾸라지 같은 행각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하겠나 언젠가는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게 이들만의 못된 매력인 것을. 그러나 잊지 말아야한다. 그들의 거대한 자의식은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데, 네가 들어 올 공간이 어디 있겠나. 근사하게 빼입고 쿨한 농담을 즐기는,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취향과 미감을 소유한 남자는 정말이지 좋은 연인이 될 수 없다.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는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이미지를 반쯤 뒤집어 쓴 이 남자는 진지한 상황을 잠시도 견디지 못한다. 그는 항상 우스개를 부리지만 그것은 웃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지배하고 싶어 한다. 양식화된 현대 사회에서 남성이 지배를 성취하는 방법은 더 이상 폭력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유머는 폭력이 허용되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이 아니던가. 쿨한 남자란 그렇다. 자신의 자의식을 줄일 수 없기에, 그것이 돈이든, 경주든, 기술이든, 전쟁이든 심지어는 연애이든 웃어 넘겨 버린다. 그것이야 말로 쿨함의 요체, 무심하고 시크하다는 거대한 자의식의 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핫 가이는 다분히 쿨 가이에 대한 대항마로서 존재한다. <트와일라잇>시리즈의 제이콥은 말할 것도 없다. <007 카지노 로얄>로 새로운 007에 낙점된 다니엘 크레이그는 그간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던 제임스 본드를 정반대의 모습으로 리셋했다. 유머대신 뜨거운 눈빛을, 말끔한 정장차림대신 든든한 근육을 드러낸 그는 그 동안 007이 일궈낸 쿨한 매력들을 뒤로하고 뜨거운 남자, 거칠고 순박한 남자의 매력을 부활시켰다. 그렇다면 <300> 이후 근육남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 제라드 버틀러는 핫 가이 열풍의 가장 큰 수혜자다. 그는 <300> <게이머> <모범시민>같은 액션영화는 물론 <P.S 아이 러브 유> 같은 로맨스 영화, 심지어는 <어글리 트루스>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을 두루 섭렵하며, 우직하고 따뜻한 남성의 정형을 도출해냈다. 물론 그 중에서는 괴팍한 모습이나 야만적인 모습 또한 적지 않았으나 오직 하나의 목표, 그리고 하나의 사랑에 몰입하는 것만은 일관된 규칙이었다. 그러니까 복기하건데 <어톤먼트>의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로비 터너처럼 사랑하는 여인의 사진을 움켜쥐고 죽음에 이르는 남성이란 얼마나 로맨틱하며,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헨리(에릭 바나)처럼 시간을 넘어서까지 한 여인의 주변을 맴도는 남성이란 얼마나 사랑스럽단 말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운명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나만 좋다는 사람이 때에 따라서는 지겹고 한심하게 보이는 건, 무료한 신의 장난이라도 되는 것일까? 오직 하나의 목적과 대상에 대한 열의란 불가항력의 힘에 의해 좌절당하기 십상이다. <트와일라잇>의 제이콥이나 <카지노 로얄>의 007을 보자.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따로 없다. 대부분의 쿨 가이가 사랑의 좌절에도 초연한 반면 다수의 핫 가이들이 스토커, 범죄자, 괴물이 되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쿨 가이와 핫 가이가 그 매력을 상쟁하는 가운데, 자신의 취향만 확실하다면 선택이란 의외로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분히 양식화, 또는 끝까지 밀어붙인 설정이요 이미지임을 놓쳐선 안 된다. 남성을 유형화하는 이런 구분법이 현실의 영역에선 매우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클로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지적이고 쿨한 기자이자 소설가인 댄(쥬드 로)과 열정적이지만 다소 폭력적인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를 내세운다. 지적인 호기심과 자의식으로 충만한 댄은 근사한 매너와 엉뚱한 언행을 교차하며 매력을 발산하고, 불타는 욕망과 눈동자를 지닌 래리는 집요한 구애와 육체적인 매력으로 상대를 공략한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을 보시라, 제 꾀에 제가 넘어간 댄은 더 이상의 찌질남이 없어 보일 정도에, 래리는 차라리 범죄자나 마찬가지, 과연 그들의 매력이란 징그럽고 치명적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선택에 앞서 한 가지 자문해야만 하는 현실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핫 가이도 쿨 가이도 아닌, 그들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 모두가 염원해 마지않는 그 선택의 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캔디냐. 다 너만 좋아하게!" 그러니까 <미쓰 홍당무>에서 양미숙이 내 뱉은 외침은 그 선택의 순간이 얼마나 자주 우리를 피해 가는 지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다. 현실세계의 남녀상열지사란 대저 그렇게 부박하고 처량한 법이다.
SKT에서 발행하는 월간 트렌드 매거진 Tissue 201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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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여, 나름 장단점이 있을거 같아여
2010/06/12 14:15재미있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06/22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