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으로 규모가 커진 만큼 더 화려하고 더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듯한 첫 극장판은 조금 위태로웠다. 캐리의 결혼식 소동과 미란다 남편의 외도, 사만다 옆집 남자의 누드쇼 같이 막장 드라마 수준의 에피소드에 보그 웨딩드레스 화보와 뉴욕 패션 위크 런웨이 등 맥락 없고 허영에 찬 물량공세가 이야기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영화 버전으로의 업그레이드라기보다는 그냥 40분짜리 에피소드를 2시간으로 뻥튀기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산만하고 헛헛했다.
물론 빅의 어이없는 배신으로 만신창이가 된 캐리의 모습에 함께 아파하고, 그런 캐리를 엄마처럼 돌보는 세 친구의 피보다 진한 우정에 감동하고, 그토록 원하던 임신에 성공한 샬롯과 함께 기뻐하고, 불행한 커플보다 행복한 싱글을 택한 사만다의 쿨한 이별 선언에 통쾌해하며 그녀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섹스 앤 더 시티> 극장판이 단순한 속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쨌든, 중년이 돼서도 여전히 철부지 소녀 같은 캐리의 시행착오가 계속되듯이 <섹스 앤 더 시티> 첫 극장판도 시행착오의 과정에 놓여있었다는 생각이다. 인터뷰 형식을 통한 다큐멘터리 요소를 가미시켜 비교적 사실적인 드라마를 표방했던 <섹스 앤 더 시티> TV 시리즈는 서서히 극적인 요소가 첨가되면서 경쾌한 코미디와 영민한 감동을 겸비한 로맨스 드라마로 바뀌었다. 그리고 두 번째 극장판 <섹스 앤 더 시티 2>는 여성들을 위한 판타지물에 가깝다. 영화는 게이 결혼식으로 문을 연다. <섹스 앤 더 시티> TV 시리즈는 여자들의 진한 우정 못지않게 게이 친구와의 우정도 놓치지 않으며 마음 잘 통하는 게이 친구 한 명 옆에 두고 싶은 여성들의 환상을 자극했었다. 평생 한 번 구경해볼까 말까 한, 비현실적일 만큼 성대하고 동화 같이 아름다운 게이 결혼식을 통해 환상특급의 시동을 확실히 걸어둔 영화는 다섯 번째 주인공이라 할 뉴욕을 과감히 버림으로써 TV 시리즈가 딛고 있던 일상과 현실성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뉴욕 여성 4인방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섹스 앤 더 시티>는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중년 여성의 로망으로 방향을 틀었다. 힘겹게 골인한 결혼에 그새 권태기를 느끼는 캐리, 못된 상사 때문에 열 받은 미란다, 애 키우다 녹초가 된 샬롯은 슈퍼우먼 사만다 덕분에 느닷없이 아부다비로 초호화 공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저 이쯤 되면 사만다를 슈퍼히어로 쯤으로 불러줘야 되는 게 아닐까 여겨질 뿐이다. 친구 셋을 데리고 비행기 1등석에 초특급 휴양지까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능력인데 아이언맨 수트가 어디 부러울까.
그동안 애인의 전용기 태워주기, 패션쇼 맨 앞좌석에 앉혀주기 등으로 ‘멋진 친구’로서의 면모를 소소히 보여주던 사만다는 판타지가 된 영화에서 그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미 TV 시리즈에서부터 캐리, 샬롯, 미란다가 나 같고 내 친구 같기는 했어도 사만다 같은 여자를 주위에서 만나긴 힘들었으니까. 쉰 살을 넘기고도 거침없는 사만다는 여성의 욕망을 집결시킨 초인적인 존재다. 물론 이번엔 그간 끄떡없던 사만다에게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넣긴 했지만, 공공장소에서 키스도 해선 안 되는 엄격한 도시 아부다비에서 ‘섹스 온 더 비치’를 몸소 실천하려 한 울트라급 배짱만큼은 그대로이며, <섹스 앤 더 시티>만의 유머를 이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역시 사만다 언니다.
‘갑작스런 여행에도 아무런 불평 않는 남편들과 아이들’을 뉴욕에 두고 네 친구가 아부다비행 호화 여객기 1등석에 오르면서부터 영화는 ‘현실적인 것’에 완전히 안녕을 고한다. 그 다음부터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지는 모험의 시작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만찬을 즐기고 초특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젊은 남자 직원들에게 공주 대접을 받으며 천국의 나날을 보내는 그녀들. 가정과 직장에서 쌓인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캐리는 아부다비 시장 한 복판에서 신기루처럼 에이든과 마주친다. 결혼 후 ‘깨는’ 모습을 남발하는 남편을 뒤로 하고 멀리 떠난 여행지에서 예전보다 더 멋있어진 옛애인을 만난다. 이보다 더 판타스틱한 경험이 또 있을까. 검정색 천과 차도르로 얼굴까지 꽁꽁 싸맨 여인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캐리의 패션쇼가 어느 때보다 현란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검은 옷자락 속에 최신 명품 드레스를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아부다비 여성의 은밀한 욕망을 이야기하고, 나이트클럽의 가라오케 무대에 선 네 친구가 ‘I am woman’을 합창하는 다분히 장식적인 장면을 통해 <섹스 앤 더 시티 2>는 이것이 여자를 위한 영화임을 강조한다. 관습에 얽매이고, 남편에게, 자식에게, 직장 일에 지친 여성들을 위로하는 환상적인 이벤트. 질풍노도의 삼십대 싱글녀 시절을 지나 중년의 유부녀가 된 친구들이 펼치는 달콤한 일상탈출은 비록 TV 시리즈만큼의 공감과 성찰을 이뤄내지는 못하지만, 현재 진행형 캐릭터들를 통해 TV 시리즈의 추억을 환기시키는 오락 영화로서의 기능만큼은 충분히 해낸다. ‘설마 2편이 나오겠어?’가 현실이 됐듯이 <섹스 앤 더 시티 3>를 만나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3편은 런던이 배경이라는 소문이 벌써 떠돈다). 물론 어디까지나 사라 제시카 파커, 킴 캐트럴, 신시아 닉슨, 크리스틴 데이비스의 앙상블이라는 중요한 조건 하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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