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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부부 클리브(애드리안 브로디)와 엘사(사라 폴리)는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인간 여성의 DNA와 갖가지 생물들의 유전자를 결합해 ‘드렌(델핀 샤넥)’이라 이름 붙일 생명체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왠지 위험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커플과 드렌 사이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흐릅니다. 어쩌면 드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애초부터 의혹과 공포에 제한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생명창조에 대한 상상력은 종교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터부의 영역에 위치합니다. 대다수의 종교는 오직 신만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상정합니다. 그들의 세계에서 생명창조는 인간이 건드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니지요. 신 앞에서 인간의 권리나 자유는 모종의 한계(하지만 그들의 사고체계 속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다고요? 모르겠군요. 그렇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분들이 있다면, 조용하게 고통 받고 있을 수많은 무신론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종교의 힘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인간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과학적 사고에 좀 더 엄밀하게 접근하려고 하는 무신론자들이라면 핍박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어요. 갈릴레오는 자신의 이성을 신 앞에서(엄밀하게는 교회였겠지요) 부정해야만 했습니다. 최근에야 이런 부당함에 대한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리차드 도킨스같은 사람이 이러한 생각들을 주도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니 세상이 무신론자들이 생존하기에 조금은 더 나아지긴 한 것이겠지요.


<스플라이스>의 첫인상은 과학에 대한 보수적인 종교적 시선이 엿보입니다. 좋게 말해 장르의 기본적인 설정을 거스르지 않는 정공법이지만, 따분하고 안이한 설정입니다. 이러한 SF공포물, 또는 과학스릴러 장르 영화들에서 종교적 관점은 이미 지겨울 정도로 반복된 바가 있습니다. <스피시즈>(1995)처럼 여배우의 벗은 몸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하는 멍청한 노선을 택하는 편이 차라리 매력적으로 보일 정도로 고릿적 사고관이 반복 재생을 이어왔지요. 아쉬운 일이에요. 복제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기술이 도래한 마당에 그에 대한 판단력이나 비전이 몇백년 전의 그것과 달라진 것이 없다니 말이죠. 어쩌면 중세인과 우리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영화들의 결말은 대부분 유사합니다. 논리적 타당성을 검토하거나 이성적인 고찰을 시도하기에 앞서 막무가내식의 종교적 회의주의가 결론을 내질러요. “그것은 금단의 연구였다”고요.

그렇다면 그간 이러한 영화들이 모두 똑같았을까요?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상당수의 범작들이 남발됐지만 남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었지요. 사실 영화사에서 이러한 장르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프랑켄슈타인>(1931)은 오히려 이 장르의 기본적인 관점에서는 튀는 작품입니다. 캐릭터부터 그랬어요. 감독 제임스 웨일이 의도한 프랑켄슈타인(보리스 칼로프)은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관객의 동정을 유발하는 가엾은 존재였으며, 익살맞은 코미디언이기도 했습니다. 관객을 빨아들이는 풍부하고도 강렬한 존재였죠. 더구나 영화의 마지막에선 프랑켄슈타인이 십자가를 진 예수를 연상하게 합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도 도전적인 해석 아닙니까? 후속작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역시 만만치 않은 작품이에요. 프랑켄슈타인을 위한 여성 생명체를 만들어 낸다는 용감한 설정의 이 영화는 유머와 공포, 드라마와 코미디를 뒤죽박죽 섞는 동시에, 괴상하고도 혼돈스러운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팀 버튼이나 기예르모 델 토로(<스플라이스>의 제작자입니다)가 그 후예라고 보면 될 만한 어둑하고도 재기발랄한 장면들이 넘실거리죠. 영화의 내러티브보다 돋보이는 것은 이러한 장면들이 만들어 내는 혼돈의 정서예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플라이>(1986, 놀랍게도 1958년에 만들어진 원작이 있습니다)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이 기묘한 SF공포물은 “금단의 연구”를 소재로 활용하면서 삶과 사랑, 쾌락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오히려 과학에 대한 태도는 중립에 가까워요.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에 의해 고립된 인간의 절망, 그리고 그러한 절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파괴적인 결말입니다. 이건 거의 신화적인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로 원초적이면서도 복합적인 드라마이지요. 이런 영화들에서는 모종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르의 뼈대는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하지만 영화의 정서나 시각적인 면에서 독창성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그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뼈대 속에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주입하는 도전적인 의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플라이스>는 어떨까요? 저는 이 영화가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금단-과학연구-SF’의 클리셰 속으로 멀리 사라질 뻔했던 영화는 뜻밖에도 가족극이라는 테마를 활용하면서 나름의 영역과 가치를 획득합니다. 주목할 것은 관계입니다. 드렌은 과학자 커플, 클리브와 엘사의 딸이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우리가 평범하게 상상하는 대체가족의 모습은 아니지요. 드렌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이들은 여느 가족이라면 30년 동안 겪을 일들을 며칠 사이에 모두 겪게 됩니다. 드렌에 대해 강렬한 모성애를 발휘하던 엘사는 드렌을 두려워하는 클리브와(금단의 연구를 주도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지요) 마찰을 일으킵니다. 육아초기의 부부갈등이 극단적으로 묘사되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인여성에 가깝도록 성장한 드렌이 그녀에게 있어 최초의 남성이랄 수 있는 클리브에게 연애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지요(네 엘렉트라 콤플렉스입니다). 이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클리브는 드렌과 복잡한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엘사는 드렌을 증오하기 시작해요. 엘사의 달라진 태도만큼 엘사에 대한 드렌의 태도역시 확연하게 변하고요. <스플라이스>는 흔히 사랑과 믿음의 공간으로 상정되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사실 얼마나 연약하고, 또한 얼마나 쉽게 위험한 관계로 변질할 수 있는가를 극단으로 밀어붙입니다.

자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스플라이스>는 SF스릴러의 탈을 쓴 가족극입니다. 영화가 대부분의 시간을 이러한 도전에 투자하는 만큼, 영화의 시각적인 면모가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특수효과의 향연을 기대하신다면 실망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비범한 작품이고 완성도 역시 평균이상입니다. 약간은 괴상한 느낌을 기대하시면서 극장에 가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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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하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플라이스 완전 기대작이였는데... 대박 ㅠㅠ아쉬움...

    2010/07/01 23:05
    • Favicon of http://zooha.tistory.com BlogIcon 쥬하  수정/삭제

      그래도 귀염둥이 드렌양이 드레스입고 춤추거나 하는 거 귀엽지 않았나요? 전 좀 짜증나면서 웃기기도 하고 괴랄한 재미가 있더군요.

      2010/07/0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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