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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지> - 모성애가 뭐길래

REVIEW ON 2010/07/12 01:28 Posted by 쥬하


우리는 거의 모두가 어머니에 의해 양육됩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양육에 필요한 자금을 투여한 어머니 이외의 사람 역시 분명하게 양육에 참가한 것인데도, 그리고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양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매우 자주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부분 아주 당연하게 양육과 어머니를 필연인듯 연관 짓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어머니의 육체를 통해 태어나고, 어머니의 육체에서 양분을 섭취하는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이 너무나 지엄한 걸요. 양육을 전담 또는 상당부분 담당하고 있는 수많은 아버지나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외에 다양한 양육자들에게는 다소 억울한 일입니다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고 보면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이라는 것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편파적이고 불공정해요.

그래서 그렇겠죠? 매스미디어나 그냥 보통 사람들의 대화, 그리고 경험을 살펴보면 자주 어머니, 또는 모성애에 대한 헌사가 튀어 나오는데, 이건 서로 아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니 그냥 똑같아요. 그 속에서는 어머니, 모성애가 일종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처럼 절대적인 가치와 영역을 확보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만한 일이에요. 정말 그 절대적인 가치나 영역, 요란스런 헌사가 완벽하게 어머니에 대한 것이었나요? 혹시 어머니에게 미안한 일들을 저질렀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사랑과 지원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까 죄책감을 해소하려고 모성애를 추켜세우는 것으로 시쳇말로 퉁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죠? 또 모르죠.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다니까, 적당히 그렇다고 하는 것일 수도, 아니면 그저 지기 싫어서 그보다 더한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인 걸 수도 있고 말이죠.


그러니까 저는 모성애를 연신 추켜 세우는 우리의 들뜬 목소리가, 모성애가 사라져 간다는 푸념만큼이나 공허하고 불필요하게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과격하게 말해서 모성애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이자 맹목적인 신앙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해보죠.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어머니에게 돼먹지 않은 짓을 해도 용서해 달라는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은 아니고요? 어쨌든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 역할은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될 여성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자 <레퓨지>의 시작, 무스(이자벨 까레)는 연인 루이(멜빌 푸포)와 함께 마약에 취해 있습니다. 한 소년이 마약배달을 오죠. 루이는 능숙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약을 녹이고 주사기를 채웁니다. 심한 중독. 루이는 깔끔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무스와 키스하는 꿈을 꾸지만 이내 목숨을 잃습니다. 사경을 헤매던 무스가 의식을 되찾자 의사는 두 가지 소식을 전합니다. 그녀는 아이를 가졌고, 루이는 죽었다고 말이죠.


여기서부터 우리는 어떤 관성화된 역할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남성의 아이를 갖게 된 여자가 영화 속에서, 또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 벌이는 표정, 행동, 결정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무스는 루이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기뻐해야하고,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아야하며, 아이를 혼자 낳아 길러야만 합니다. 그런데 무스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녀의 얼굴은 신경질적인 여성의 얼굴에 가깝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는 임신에 대해 기뻐하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그녀는 루이의 동생 폴(루이 로넌 슈와지)에게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녀는 아이를 가졌고 장차 어머니가 될 여성입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바라보는 것은 어머니 보다는 무스라는 여자 사람입니다. 그녀는 루이가 떠나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폴, 또한 동성애자로서 생생한 연애행각을 벌이는 폴을 볼 때마다 각성합니다. 한편 그녀는 루이와 닮은 폴에게(당연해요. 형제이니까) 욕망을 느껴요. 하지만 그러한 욕망은 실현이 불가능하죠. 아시다시피 임신기간에는 호르몬작용으로 다소간 성욕이 증가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레퓨지>는 연인의 죽음과 그 연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의 낯설지만 설득력 있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 가지 강요와 고정관념을 적당히 걷어낸다면 무스의 인생역정과 그녀의 선택들이 그리 이상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모성을 배반하는 그녀의 표정, 행동, 결정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유의해서 들어보세요. 영화의 마지막 무스가 관객을 바라보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말이죠. 유주하 기자(FILMON)


p.s

1. 멜빌 푸포는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전작 <타임 투 리브>에서도 죽었습니다. 저번에는 결말에서 죽더니, 이번에는 죽음으로 영화를 열었어요. 오종 감독이 죽이고 싶은 배우인가 봅니다.

2. 전작 <리키>가 강렬한 모성애를 등장시켰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레퓨지>는 <리키>의 도플갱어같은 영화일까요?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인터뷰에서는 대충 그렇다는 식으로 대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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