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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의 바다 곳곳에서 <악마를 보았다>에 대한 소문이 파도치고 있습니다. 심의위원회의 제한상영 판정, 1분 30초의 삭제분량, 고어, 슬래셔, 고문 포르노, 스플래터, “이병헌 할 말을 잃어”, “최민식도 당황”, “김지운, 회심의 미소”, 와사비 발언 등등 수많은 키워드들이 검색과 궁금증 사이를 쓸려 다니는 중입니다. 김지운이 회심의 미소를 흘릴 만도 하지요. 봉준호나 박찬욱에 비해 상복이 따르지 않던 그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대접을 감수해야만 했던 그간의 억울함, 상처받은 자의식을 떠올리면서, 그는 작금의 폭풍 반응을 흡족한 기분으로 즐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마를 보았다>는 ‘궁금해서’ 봐야할 영화가 되고 있는 중입니다.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따지자면 라스 폰 트리에가 울고 갈 수준이에요.

<악마를 보았다>는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연쇄살인마에게 연인을 잃은 남자가 복수를 계획하고, 실천하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분노에 휘말린 나머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객은 이 여정의 관찰자로서 영화의 제목을 곱씹게 하는 결말을 목도하게 됩니다. 악마를 벌하려다 악마가 되어 버리는 남자. 복수의 대가는 참담하고 허탈합니다.


저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두 편의 영화에서 일련의 자경주의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는 공히 잔혹한 범죄, 또는 범죄자들에게 복수를 시도합니다. 그 주체는 국가나 공적인 단체가 아닌 개인이고, 기준은 법이 아닌 분노입니다. 방법이 무척이나 강경해요. 여기에 노림수가 있죠. 잔혹함의 수준이 강도를 높일수록 복수의 쾌감이 증가하는 묘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인정사정이 없어요. 

저는 여기에서 어떠한 징후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한국 사회의 불안과 공포, 욕망이 대중영화의 화법을 빌려 표출되고 있는 것이죠. 떠들썩한 반응은 그 증거나 마찬가지예요.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는 대중의 관심을 얻는 데에 성공했고 순조로운 흥행이 예상됩니다. 비록 센세이셔널리즘이라고 할지라도 현상은 의미를 내포하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래 한국 사회는 범죄에 대한 공포, 그것도 강력 범죄에 대한 공포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이를 국가나 경찰이 보호해주지 못하리라는 불안 역시 매우 커진 상태예요. 대책 없는 불안이 분노를 키우고 있고 대중은 지금 가혹한 처벌과 그러한 처벌을 담당할 가학적인 징벌자, 개인 단위의 자경주의자를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저씨>와 <악마를 보았다>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줍니다. 아저씨와 소녀의 유대감, 소녀를 구하고 싶은 아저씨의 간절함에 주목하려는 <아저씨>에 비해 <악마를 보았다>는 복수, 그리고 복수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폭력, 살해, 시체 훼손 장면에 상당한 공을 들입니다. 현실감 있는 범죄묘사는 <아저씨>에도 등장합니다. 장기밀매나 인신매매에 대한 끔찍한 장면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되니까요. 하지만 원빈이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깎는 장면이후, <아저씨>는 줄곧 소미를 구하고 싶은 아저씨의 간절함에 주목합니다. 그가 사용하는 폭력이 강하고 잔혹하다는 것은 간절함 마음의 증명이나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는 다릅니다. <아저씨>가 영화 내부적으로 범죄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범죄를 막으려는 의도가 부제합니다. 오히려 지루할 정도로 오랜 시간 범죄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 안에 담긴 잔혹성을 키워가지요. 이건 효과가 있습니다. 일단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런 장면들이 마케팅에 있어 좋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어요. 그리고 김지운이 시도하고자 하는 테마, ‘복수’의 한계치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꿈꿨을 카피라이트가 귓전을 울리는 것만 같습니다. “복수가 과연 무엇인지를 탐험한 가장 강도 있는 영화, 박찬욱을 넘어선 복수의 거장”

저는 폭력에 관한한 거의 예술영화풍의 시도에 도전한 <악마를 보았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김지운의 욕망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건설적인 욕망이에요. 영화는 주기적으로 생산되는 한국형 잔혹 스릴러 중에서 가장 농밀한 방법으로 여성을 농락하고 살인을 전시하는 동시에 사체를 훼손하는데 성공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영화는 (현실의)반영임이 분명하고 그 구성은 허구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영화가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범죄에 대한 묘사를 <악마를 보았다>의 수준으로 시도한다면 영화는 범죄, 범죄자에 대한 태도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태도 역시 규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여성을 농락하고 살인을 전시하면서 사체를 훼손하는” 길고 지루한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상업영화가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천박함을 별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는 간혹, 아니 자주 극한의 관찰과 실험을 벌입니다. 세상을 비추다보면 그곳에는 잔혹함 역시 존재하고 있고 이를 비추는 것은 어떠한 면에서는 영화의 의무이자 당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목적에 따라 판이한 맥락 위에 놓이는 것입니다. <악마를 보았다>의 폭력묘사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쎈척’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군요. 비슷한 소재를 다뤘던 <추격자>는 관객의 심리를 사건을 해결하려는 부패 형사, 김윤석에게 이입시키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비록 범죄를 막으려는 그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지만 관객은 범죄를 막으려는 그의 질주에 몰입할 수 있었어요. 잔혹한 장면은 부수적이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다릅니다. 감정은 어디에도 머무를 수가 없어요. 관객은 참혹하게 부수어지는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무기력감을 느껴야하고, 이후 김지운이 제시하는 복수의 알레고리를 학습해야 합니다.

김지운은 엄청나게 현실적인 미장센을 동원해 살인, 복수에 대한 장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연쇄살인은 느와르나 웨스턴이 아닙니다. 이건 실제 연쇄살인의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생존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현학적인(그나마도 조야한 수준의) 알레고리를 실험하기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이런 식으로 유희한다는 것은 소위 ‘작가’라는 사람이 행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영상과 음향을 통해 ‘경험’을 만들어 내는 영화감독이라면, 게다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대중영화연출가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B급 영화의 매력은 그에 적합한 요소(엉성함, 또는 과도함)로 만들어지는 B급의 장르 컨벤션 안에서 유효한 것입니다. 극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실제 사람들의 고통과 상흔 속에 파고드는 메가블록버스터는 슬래셔, 고어, 스플래터 무비의 존재기반처럼 게토화된 미학 안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장르영화의 장인으로 불리는 그가 또 하나의 시도, 매우 극단적인 시도를 감행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악마를 보았다>는 좋은 영화가 아닙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미의 수준 역시 기대이하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모르겠네요. 극사실주의 고문, 신체훼손극이라는 신종장르에 애정을 품으실 수 있다면(그러한 취향이 있으시다면 현행법의 한계 내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자제하시기를) 무척이나 쾌적한 시간이 되실 것입니다. 유주하 기자(FILMON)

p.s

1. 기계적으로 말하자면 영화의 촬영, 음향, 조명, 음악이 좋더군요. 특수효과 역시 대단합니다(그럴 수밖에요). 교회 언저리도 피해 다니는 편이지만 왠지 기도하고 싶어지더군요.

2. 중반부에 등장하는 산장(펜션? 모텔?) 장면은 무척이나 장르적인 공간으로 보입니다. 산장공포영화 같아요. 역시 김지운.

3. 기자간담회에서 김지운 감독은 “와사비를 좀 많이 쳤다”며 흥소를 날리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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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cyworld.com/ajihompy BlogIcon 아지아빠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인하다고 하여 전혀 영화에 관심이 없었는데 굉장히 관심을 갖게 만드는 글이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정말 궁금하네요..^^

    2010/08/14 15:00
    • Favicon of http://zooha.tistory.com BlogIcon 쥬하  수정/삭제

      하아... 궁금하시지 않기를 바랬지만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어쨌든 재밌는(쿨럭) 관람 되세요~

      2010/08/15 23:37
  2. Favicon of http://blog.daum.net/naturalist2010/ BlogIcon 예영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평론 잘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김지운 감독님께서 실패하신 것 같습니다. 화제는 되겠지만, 영화의 정서적 공감대랄까, 완성도 면에서는 실패작이라고 봅니다.
    몹시 불쾌하게 느끼고 불만을 느낀 관객들이 많으신 게 그 실패의 증거라고 봅니다.

    차라리 스토리가 수현의 황당무계한 '범인 잡았다 풀어주기 반복'이 아니라, 대추격 끝에 겨우 범인을 잡고 고뇌하고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그런 정상적인 스토리의 복수 영화를 만드셨다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악마는 연쇄살인마 하나로 충분하지, 수현까지 광기에 동참해서 광기 파노라마를 연출한 건 무의미한 스토리라고 생각되네요. 평범한 보통 사람이 그래보았자 통쾌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어리석은 광기에 불과하니까요.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 거지요.

    2010/08/16 00:16
    • Favicon of http://zooha.tistory.com BlogIcon 쥬하  수정/삭제

      이동진씨는 이렇게 말했죠. '무엇'과 '왜'를 결여한 '어떻게'의 공허함. 누군가 '왜?'라고 집요하게 묻는다면 과연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영화인가 싶더군요. 장르 미장센이라고 하기엔 지루하고 재미도 없었을 뿐더러 필요이상으로 리얼했고요. 어쩌면 김지운 감독 자신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0/08/17 04:34
  3. 영화란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김지운감독님을 사랑했던 저로써는 영화보는내내 안타까웠습니다...
    그동안의 억울함을 표출해내신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심해서 영화가 오히려 스트레스였던건 정말... 오래간만이였네요
    너무 강한 이미지들때문에 집중되지 않는 효과와 스트레스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한국영화중에 최고의 임팩트를 준것같네요...

    2010/08/17 01:21
    • Favicon of http://zooha.tistory.com BlogIcon 쥬하  수정/삭제

      어떤 사람들은 장면 자체의 잔혹도에 대해서 품평을 하더군요. 머 그런 거 있잖아요. "이 정도가 머가 그렇게 잔인하다"고 하면서 어떤 가상의 우위에 서는 기쁨을 누리는 병림픽.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있는데, 영화 보면서 '쎈'척하는 스노브 문화가 김지운 감독에게 중2병 스러운 열망을 안긴 것은 아닌지... 아무리 생각해도 폭력의 이유가 너무 장르스러운데, 장르를 목적으로 하기엔 미장센이 지나치게 리얼하고, 앞뒤가 안맞는 거죠. 그저 괴랄할 따름입니다.

      2010/08/17 04:56
  4. 눈사람  수정/삭제  댓글쓰기

    '쎈척'일수도 있겠네요..

    2010/08/25 00:19
    • Favicon of http://zooha.tistory.com BlogIcon 쥬하  수정/삭제

      그냥 쎈척이면 귀엽기라도 하겠어요. 이 정도로 리얼하게 범죄를 묘사하는 것이 그저 장르적인 욕망이라고 말한다면 정말 허탈한 일입니다. 저는 가스파 노에의 영화들 에서도 나름의 이유를 찾는 정도인데 <악마를 보았다>는 도무지 답이 없더군요.

      2010/08/27 00:01
  5. wed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이고 싶은'과 '악마를 보았다' 중에 '죽이고 싶은'을 보려고 했지만, 같이 가는 일행이 악마에 손을 드는 바람에, 내일 악마 보러 갑니다. 이 리뷰를 읽고 나니 참담하네요. '죽이고 싶은'도 리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10/08/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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