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지>는 자본주의의 악몽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카이지(후지와라 타츠야)는 평범한 일본의 젊은이에요. 선량한 편이지만 게으르고, 얄밉지는 않은데 답답한 편이지요. 그런 그가 무한경쟁 사회, 더구나 극도의 불황에 빠진 경쟁사회에서 당할 곤경은 사실 뻔해 보입니다.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고 빚은 늘어만 가는 것이죠. 이런 상황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 비슷합니다. 88만원 세대가 겪고 있는 곤경이 바로 이렇잖아요, 기업은 부모나 신보다도 전지전능한 권위를 확보하는 가운데 교육받은 젊은이들의 가치는 나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수요, 공급의 쌍곡선이 교차하면서 희비는 엇갈렸어요. 기업은 넘쳐나는 인재를 걸러 쓰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칠 지경인데, 젊은이들은 과도한 업무, 경쟁, 낮은 임금과 생활의 질 속에서 비명조차 참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체제안의 개인은 연약합니다. 불평조차 불가능하지요. 현실적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 같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약한 자본을 가진 대중은 이미 기본적인 자존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의 힘은 윤리의 문제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경쟁사회에서 자본을 더 많이 확보한 사람은 그 덕성을 칭송받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노력부족과 게으름을 근거로 비난까지 당해야합니다. 가뜩이나 궁핍한 처지인데도 말이죠. 항상 승리하지 않는 한, 경쟁에서 살아남지 않는 한, 인생의 행복은 ‘파란나라’에나 있는 것입니다.
카이지는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소리에 어떤 기업이 기획한 게임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이 기업이 무척 이상해요. 피라미드 조직 같기도 하고 사이비 종교집단 같기도 해요(아, 같은 말인가요?). 교묘하게 사람들을 유혹해 빚을 갚게 해준다고 얼러 놓고는 오히려 더 큰 빚을 안기는 게 이 회사의 수익모델입니다. 이 회사가 고안한 게임은 수렁처럼 참여한 사람을 집어 삼킵니다(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수법 아닙니까?). 돈은 생명보다 소중하고 경쟁은 인격을 넘어서는 지상과제. 게임에 지는 사람은 노예가 되어 빚을 갚을 때까지 초저임금, 무한노동을 감당해야 합니다.
자 나름 공격적이기도 하고 의미심장한 설정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예요. 저는 이런 1980년대식 감성,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계열의 통찰이 오늘 날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최근의 상황을 보자면 오히려 1980년대보다 더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괴상할 정도로 거대한 기업은 엄청나게 사악한 일들을 벌이고, 나약하고 선량한 개인은 그 속에서 악전고투하지요. 목적은 뚜렷합니다.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진지한 알레고리가 다소 구식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을 끝까지 몰고 간 감독(사토 토야)의 열의에는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게임이 너무 만화처럼 보이는군요. 원작이 만화라고해서 실사 영화의 분위기까지 만화같은 것은 무성의해 보입니다. 왠지 모르게 진지해 보이질 않아요. 비현실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영화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인데, 카이지를 궁지에 빠트리는 게임은 도박을 넘어 거의 서커스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기업에서 계획하고 운영하는 게임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간단하거나, 허술한 면이 있어요. 카이지의 반격은 감정의 과잉이 심합니다. 어찌나 힘을 주는지 이건 빚을 갚으려다가 우주를 정복하겠어요. 물론 현실의 대기업들이 <카이지>의 기업처럼 법의 지엄함을 요상한 재주를 부리면서 비웃기는 하죠. 영화의 주인공이란 멜로드라마를 연기하는 슈퍼히어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내부의 개연성이 애초부터 무너지는 것을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간단히 말해 설정이나 각본이 나쁜 거예요.
황당할 정도로 극단적인 진행이 흥미롭기는 합니다.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게임 때문에 말이죠) 화끈한 장면들도 있고요. 툭하면 눈알과 목에 핏줄을 세우는 연기 방식도 독특한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쉬워요. 좀 더 현실의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었더라면, <카이지>는 훨씬 더 괜찮은 영화가 됐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왜?”나 “무엇?”이 흥미롭다 할지라도 역시나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영화의 숙명이니까요. 유주하 기자(FILMON)
p.s
1. 한국어 대사가 있습니다. 재일교포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하거든요. 단역. 대사는 어색한 발음의 욕설입니다.
2. 독백이 자주 나오더군요. 연극으로 각색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3. 원작의 제목이 <도박묵시록 카이지>입니다. 아주 대단한 박력이에요. 영화의 분위기가 이해되는 부분이죠.
4. 카가와 테루유키는 요즘 비슷한 배역들을 연달아 맡는 것 같은데요. 여전히 잘한다는 느낌은 있지만 좀 거부감이 들더군요. 눈에 힘을 너무 많이 줘요.
5. 후지와라 타츠야는 <데스 노트> 때도 그렇고, 항상 비슷한 절규 연기를 합니다. 왠지 모르게 연말 파티 장기자랑에서 따라하고 싶군요.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원작만화 '도박 묵시록 카이지'는 도박에 인생을 담보로 건 한 니트족 젊은이의 몰락과 기사회생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는 작품이다. 엉성하면서도 뾰족한 코가 특징인 그림체에 울먹거리는 캐릭터들의 표정, 그리고 '술렁'이라는 의성어가 인상적으로 다가온 본 작품은 '데스 노트'나 '라이어 게임' 같이 심리묘사의 재미를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결국 인기만화들의 수순대로 2007년에는 [역경무뢰 카이지]라는 제목의..
영화화 된다고 해서 조금 궁금했는데 역시나 별루인가 봅니다. 이런 극단적이고 과장된 설정은 영화화하기에는 좀 무리인듯 싶어요. 원작 만화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림은 제가 발로 그려도 비슷하게 흉내낼 수준이지만 인간의 사악한 면만을 극도로 부각시킨 사악하게 재미있는 만화입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손을 뗄 수 없으니 바쁠 때에는 보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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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러서 글 잘 읽고 갑니다.
2010/08/23 13:23영화는 안봐서 모르겠지만 만화는 본 입장에서...
이 만화가 원래 그렇습니다. >.<
글을 보니 원작 분위기를 그대로 잘(?) 옮겨 놓았나 보네요.
ㅎㅎ 지금 저는 원작 만화가 몹시도 궁금해지는 중입니다.
2010/08/24 00:44영화화 된다고 해서 조금 궁금했는데 역시나 별루인가 봅니다. 이런 극단적이고 과장된 설정은 영화화하기에는 좀 무리인듯 싶어요. 원작 만화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그림은 제가 발로 그려도 비슷하게 흉내낼 수준이지만 인간의 사악한 면만을 극도로 부각시킨 사악하게 재미있는 만화입니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손을 뗄 수 없으니 바쁠 때에는 보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2010/08/27 15:54ㅎ~카이지 원작만화를 정말좋아했는데 넘길어져서...위트있는 설명 잼있게 봤어요~ㅋ 이런 유머 인상적이네요~ㅎㅎ
2010/09/15 1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