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프레데터스>의 원작 <프레데터>(1987)를 상당히 좋은 액션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냥꾼과 사냥감의 시점이 번갈아 제시되는 것도 흥미로웠고, 어두컴컴한 정글의 후덥지근하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열대야의 악몽 같았죠. 어두운 정글에서 도망 다니는 사냥감이 된 기분,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사냥꾼이 된 기분. 저는 이러한 기분들이 보편적이고 익숙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대부분 동내 누렁이의 맹렬한 추격에 쫓겨봤거나, 개미 같은 작은 생명들을 상대로 냉혹한 사냥꾼의 역할을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공포와 쾌락이 교차하는, 잔혹하지만 본능적인 사냥 놀이 말이에요.
저는 <프레데터>가 그러한 본능적인 공포와 가학성을 유능하게 자극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인으로 유추할 수 있는 프레데터는 <공각기동대>에서나 봤음직한 광학미체같은 최첨단 은폐술을 활용하는 반면 걸쭉한 백병전에 열광하는 엽기적이거나 변태적인, 또는 사냥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는 살인마입니다. 그 목적은 의문이에요. <에이리언 VS. 프레데터>(2004)에서는 그들의 목적이 에이리언 추적에 있다는 식의 상당히 따끈한 주석을 달지만, 이 시리즈(<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도 있었다는 사실!)가 정통성을 갖춘 프레데터의 계승자라기엔 무리가 있지요.
주목해야할 것은 프레데터가 추구하는 사냥의 법칙입니다. 어쩌면 가학적인 게임의 법칙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게임의 법칙에는 페어플레이 정신 같은 면이 있습니다. 가령 아주 가끔이지만 프레데터는 사냥감과 자신의 조건을 동일하게 맞추려는 행동을 합니다. 최소한 마구잡이 살인마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냥의 과정 역시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그는 사냥감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다가 약점을 간파해 단숨에 제압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살육의 속도를 늦추기도 하는데, 이것은 사냥감의 잠재력, 그러니까 생존기술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데에 목적이 있어요.
이걸 유희라고 봐야할지 사냥에 대한 종교적 열광이라 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얼핏 짐작하건데, 아메리칸 인디언에 대한 미국인의 일반적인 상상력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잘 살펴보면 프레데터의 치렁치렁한 머리부터 왠지 인디언의 머리장식 같지 않습니까? 사실 프레데터는 경건한 사냥꾼의 면모와 변태적인 연쇄살인마의 면모가 뒤섞여 있습니다. 딱 얄팍한 미국식 이미지 생산, 소비방식이에요. B급 액션영화의 주연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요.
생각해보면 어느덧 관련 프랜차이즈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첫 편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정글에서 도시로 배경을 옮긴 후, 난장을 벌였던 <프레데터2>(1990)도 나쁘지 않았어요. 프레데터가 외계 사냥꾼 종족의 일원임을 암시했던 끝장면도 괜찮은 아이디어였고요. 오랜 휴지기 후(무려 14년만)에 되살아난 <에이리언 VS. 프레데터>시리즈에서는 축복받은 침샘과 왕성한 번식력의 에이리언이 동반 출연했으니, 많은 영화마니아들의 기대를 모았으나, 결과는 상당히 어설펐습니다. 한계는 명확했어요. 징그럽게 뜸을 들이고 아슬아슬하게 유희하는 프레데터의 사냥방식은 인간 같이 나약하고 망설임 많은 존재에게나 공포스러운 것이지, 무모하고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에이리언에게는 별반 대단할 것이 없으니까요. 고대유적을 배경으로 인간과 합심해 에이리언퀸을 소탕하는 프레데터에게 남은 것은 그냥 적절하게 덩치좋고 싸움잘하는 보디가드의 아우라가 전부였어요.
말하자면 <프레더터>와 <에이리언>의 이종교배는 사자와 호랑이의 싸움을 붙이고 싶은 단세포적인 상상력이 불러들인 황당한 결과물이었어요. 반면 <프레데터스>는 1987년 원작의 힘을 상당부분 되살리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일단 배경부터 그래요. 뜬금없는 낙하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원작 <프레데터>의 그것과 같은 울창한 밀림에 불시착합니다. 그리고 곧 프레데터의 사냥이 시작돼요. 다양한 함정과 추적은 끊임없지만 사냥꾼 프레데터는 쉽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월등한 무기와 완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한 번에 사냥감을 몰살시키는 것도 아니에요. 정교한(?) 덫과 함정을 통해 한 번에 한 명씩 천천히 쓰러트리죠. 어떻게 보면 사냥 기술을 뽐내는 것도 같아요. 이 모든 것이 원작 <프레데터>의 그대로이지요. 물론 약간의 변화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사냥감이 될 여러 명의 인물들이 저마다 강력한 생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는 점, 그리고 프레데터가 여럿이라는 점입니다.
인물의 자질이나 숫자가 증가했기 때문에 액션의 질은 높아졌습니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강화요법이에요. 하지만 그 결과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군요. 다시 정글을 배경으로 한 것도, 그리고 여기선 말할 수 없는 독특한 아이디어나 설정을 집어넣은 것도, 그리고 능력자 컨셉의 인물들을 투입한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입니다. 문제는 프레데터의 시점을 지나치게 축소한 데에 있습니다. 프레데터 시리즈의 흥미는 아무래도 프레데터라는 독특한 사냥꾼의 특성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투명한 모습이 되어 목표물의 눈앞까지 잠행하는 조용한 사냥중독자, 서서히 조여드는 공포로 희생자를 압도하는 은근한 존재감이야말로 프레데터의 진면목이라는 말입니다. <프레데터스>에선 그러한 매력이 날아가 버렸더군요. 머릿수는 늘었는데 오히려 약해진 느낌이에요.
연출을 맡은 님로드 앤탈은 좋은 감각을 갖춘 젊은 감독입니다. <콘트롤>(2003)이나 <베이컨시>(2007)같은 괜찮은 공포스릴러를 만들었지요. <프레데터스>에서도 정글을 누비는 액션신 같은 경우,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가 있어요. 하지만 <프레데터스>에서 프레데터의 매력이 덜하다면 아무래도 문제이지 않겠습니까? 시리즈에 대한, 어느 정도의 맹목적인 애정을 갖고 있었음에도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도 저는 다시 한 번 속편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프레데터스>정도의 완성도만 충족해준다면, 시리즈의 팬으로서 기다려 볼만하다고 생각해요. <에이리언 VS. 프레데터>같은 속편도 있었는데, 설마하니 더 심하지는 않을 테지요. 유주하 기자(FILMON)
p.s
1. 애드리언 브로디의 희한한 행보는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좀처럼 액션이나 스릴러에 나올 얼굴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이런 영화들로 이력을 채우는군요. 그러고 보니 먼 옛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할리 베리에게 폭풍 키스를 날리던 열정이 떠오르는군요.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나름 뜨거운 영혼인가 봅니다.
2. 로렌스 피시번이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 풍으로 등장하더군요. 흥미롭기는 했는데, 너무 간략하게 다뤘어요. 결과적으로 좋은 설정도, 역할도 아니었어요.
3. 사무라이식의 대결이 있습니다. 미국 B급 영화가 다루는 동양 레퍼런스의 한계를 반복하더군요. 장소나 리듬은 좋은데, 칼싸움의 액션 연출을 너무 건성으로 하는 느낌입니다. 이걸 왜 끼워 넣었는지 감은 잡겠는데, 칼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칼싸움 그 자체의 완성도라는 사실. 이 정도 수준이면 북미권 관객들에겐 먹어주는 것입니까?
4. <익스펜더블스>와 <프레데터스>를 놓고 보자면 저는 당연히 <프레데터스>를 추천하겠습니다. 둘 다 복고적인 감성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익스펜더블스>는 모든 면에서 복고적이에요. 촬영도 각본도, 연출도 마냥 복고적이죠. 이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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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번 주에 익스펜더블을 봤습니다.
2010/08/28 11:13다음 주에 프레데터스를 볼 예정인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을 영화로 생각되는군요.
리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