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을 조준하는 대중문화에서 리비도는 주요한 재료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린 15초짜리 CF에서부터 2시간짜리 영화까지 다양한 영상매체 속에서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직간접적인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다. 매체에 따라, 감독의 필요에 따라 은밀하게 자극할 수도, 노골적으로 속살을 드러낼 수도, 아니면 유쾌하게 희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린 하드코어 방식이 아닌 좀 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범주에서 소프트하게 포르노그래피를 녹인 작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른바 ‘섹스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서 말이다.
과격한 신체 노출과 직설적인 성행위를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본원적인 욕망을 건드리고,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애욕이나 가학적이고 광적인 정사가 아니라 일상에 밀착하거나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덧댄 가벼운 포르노그래피. 여관방과 지하 클럽처럼 어둡고 은밀한 곳을 벗어난 섹스 코미디는 짜릿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보다 밝고 쾌활한 재미를 자아낸다. 적당히 외설적이면서 유머러스함과 갸륵함까지 챙긴 섹스 코미디는 그동안 우리를 어떻게 유혹해왔을까.
‘딱지 떼기’라는 일생일대의 과제
섹스 코미디의 대표작으로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 1999)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이틴 섹스 코미디의 전설이라 할 이 영화는 ‘총각 딱지’를 떼려는 소년들의 분투기다. 혈기방장한 청소년기의 마르지 않는 관심사는 첫사랑과 첫경험이다. ‘예쁜’ 하이틴 영화가 의미 있는 인간관계로서 첫사랑 찾기에 매진할 때 한편에선 어쩌면 청소년들에게 첫사랑이라는 이상향보다 더 살갗에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첫경험에 대해 다뤄왔다. 비교적 성적으로 개방적인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딱지를 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떤 룰 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아메리칸 파이>는 그러한 아메리칸 보이들의 성문화를 현실감 있게 그렸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주인공과 친구들은 ‘아직도 숫총각’이라는 사실 때문에 불안과 초조의 나날을 보낸다. 졸업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총각 딱지를 떼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그들의 어설프고 서툰 행동을 통해 영화는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성적 호기심을 솔직하고 귀엽게 전달한다.
<아메리칸 파이>는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을 거두며 이후 7편이 넘는 속편이 양산됐으며, 성장기 통과의례를 다룬 영화의 기준점과 같은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딱지 떼기 작전에 돌입한 얼뜨기 소년들의 기상천외 소동극 <수퍼배드>(Superbad, 2007), 역시나 첫경험 못한 콤플렉스로 의기소침해 있던 고교 졸업반 소년이 채팅으로 만난 여자와의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9시간이나 자동차를 몰고 간다는 황당 어드벤처 로드무비 <섹스 드라이브>(Sex Drive, 2008) 등이 소년들의 영원한 숙제를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
한편 ‘<아메리칸 파이>의 여성 버전’이라고 홍보된 독일영화 <걸스 온 탑>(Girls On Top, 2001)은 생애 첫 오르가즘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소녀들의 해프닝이다. <아메리칸 파이>에서 소년의 예습을 도왔던 게 식탁 위에 놓인 애플파이였다면, <걸스 온 탑>에서 예기치 않게 소녀를 흥분시킨 건 바로 자전거다. 기존의 하이틴 섹스 코미디가 주로 소년의 욕구에 집중했다면 <걸스 온 탑>은 오롯이 소녀의 성에 포커스를 맞췄다. 과감한 도전을 즐기면서도 섹스에 대한 환상과 실재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위태로워하는 10대 여자아이들의 심리가 진솔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한편 ‘딱지 떼기’라는 소제가 ‘당연히’ 청소년기를 겨냥하고 있을 때 홀연히 등장한 <40살까지 못해본 남자>(The 40 Year Old Virgin, 2005)는 신선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40살이 되도록 섹스 한 번 못해 본 남자의 처절한 숫총각 탈출기다. 그간 있었던 몇 번의 기회를 어이없는 실수와 사고로 날려버린 후 섹스에 대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본의 아니게 ‘순결한 중년’을 맞이하게 된 앤디는 회사 동료들에게 자신이 동정남이라는 사실을 들켜 버리고 만다. 이때부터 오지랖 넓은 동료들이 앤디의 총각 딱지를 없애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는 감독,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저드 아패토우의 출세작이다. 주로 마약과 섹스에 골몰하는 루저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아패토우는 시시껄렁한 유머와 강도 높은 음담패설 속에서 보통의 남자들이 생각하는 연애와 성을 리얼하게 건저 올린다. 포르노 비디오를 수집하고 2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를 스토킹 하는 동료들이 철없는 수컷의 모습이라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액션피겨를 모으는 숫총각 앤디에게선 동심을 간직한 순수함이 엿보인다. 하지만 앤디는 가치를 보존한다는 목적 하에 포장박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액션피겨처럼 자신만의 방에 갇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다. 음탕한 친구들의 코치를 받으며 성에 눈뜨게 된 앤디는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여자와 첫경험을 치르며 비로소 어른이 된다.
로맨틱 코미디의 에로티시즘
로맨스에 에로티시즘이 빠지면 심심하다. 멜로영화가 남녀의 교감이 만들어내는 아름답거나 격정적인 정서를 그려낸다면, 강박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차이를 얘기하고 티격태격 싸우다가 끝내 결합되는 커플을 보여주는 로맨틱 코미디는 섹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감정과 미시적인 담론을 뽑아낸다.
<베터 댄 섹스>(Better Than Sex, 2000)의 남자와 여자는 파티에서 눈 맞아 부담 없이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긴다. 그런데 하룻밤으로 끝내기엔 심히 아쉬움이 남는 거다. 결국 두 사람은 남자가 출국하기 전 3일 동안 여자의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마음껏 즐기게 되는데, 이들의 침대 속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다. 재미있는 점은, 만나고 자고 알아가고 질투하고 싸우고 지루해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연애의 과정이 사흘 안에 다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새 섹스가 지겨워진 두 사람은 머릿속으로 각자 딴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기도 한다. 내레이션을 통해 남녀 각각의 속마음을 세밀하게 드러내는 영화는 육체적 쾌락이 정서적 교감으로 이어지고, 의미 없던 섹스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의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펼쳐낸다.
<어글리 트루스>(The Ugly Truth, 2009)는 ‘남자는 짐승, 여자는 내숭’이라는 연애에 관한 오랜 속설을 끌어들인다. 여자는 고품격 방송을 지향하는 뉴스 PD로, 야한 농담 보다는 클래식음악을 즐기는 완벽한 신랑감을 기다린다. 그리고 남자는 심야 TV쇼를 진행하는 섹스 카운슬러로, ‘남자는 섹스 밖에 모르는 변태’라고 주장한다. 영화는 극과 극의 두 사람이 만나 으르렁대는 모습을 통해 추한 진실을 들춰내고 뒤집으려 한다. 여자는 짐승 같지 않은 남자도 있다는 걸 증명하려 하고, 남자는 내숭 속에 감춰진 여자의 욕망을 꺼내 보려고 한다. 결국 성욕에 대해 거침없이 입담을 늘어놓던 남자의 순애보와 고상한 내숭녀의 원초적 본능이 고개를 들면서 영화는 익숙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앞선 두 영화가 비교적 평범한 남녀의 관계 속에 드러난 에로티시즘을 보여준다면, 다음 두 영화는 조금 특별한 상황 설정으로 섹스의 딜레마를 얘기한다.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The Girl Next Door, 2004)는 ‘내 여자친구가 포르노 스타라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명문대 입학을 앞둔 모범생이 이웃집 퀸카를 애인으로 맞이해 환상적이고 아찔한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유명한 포르노 배우였다. 그는 웃어야 되는 걸까, 울어야 되는 걸까? 부러움에 몸서리치던 친구는 그에게 “실컷 즐기고 끝내버려”라고 말하지만, 그는 야릇한 배신감을 느끼고 그녀의 사랑을 의심한다. 전직 포르노 스타와 모범생의 순탄치 않은 로맨스를 통해 사랑과 섹스의 의미를 신랄하게 파헤치는 영화다.
그런가 하면 <굿 럭 척>(Good Luck Chuck, 2007)은 로맨틱 섹스 코미디 중에서 가장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주인공 찰리는 저주에 걸렸다. 자신과 잠자리를 한 여자는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짝을 찾아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들에게 찰리는, 더 정확히 말해 찰리와의 섹스는 효과만점의 부적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여자들이 한 번만 자자고 달려드는 상황. 원 없이, 조건 없이 여자들과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건 모든 남자들이 부러워할 축복일 것이다. 역시나 이 상황을 마음껏 즐기라는 친구의 부추김에 따라 찰리는 일단 ‘봉사정신’을 발휘해 오는 여자들을 막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서 찰리는 사상 최고의 딜레마에 빠진다. 만약 그녀와 잔다면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와의 잠자리를 거부한다면 역시 그녀는 자신을 떠날 것이다. 세상 모든 여자와 섹스를 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애인과는 섹스를 할 수 없는 이 남자. 행운아일까, 불행아일까? 강도 높은 성적 농담들과 수많은 체위로 이뤄진 버라이어티한 섹스 신들로 19금 로맨틱 코미디의 진수를 뽐내는 <굿 럭 척>은 참으로 발칙하게 재미있는 영화다.
좌충우돌 베드신 창작기
음란소설을 집필하려는 선비의 이야기 <음란서생>(2006)과 섹스 신을 연출하려는 영화감독 이야기 <섹스 이즈 코메디>(Sex Is Comedy, 2002)는 일종의 메타 포르노의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에로틱 코믹 사극의 신기원을 열어젖힌 김대우 감독의 <음란서생>은 점잖은 사대부 양반이 야설작가로 입문하는 과정에서 한복자락을 뛰어넘어 21세기 인터넷 야동시대를 아우르는 농도 짙은 유머를 통해 유교적 윤리가 뿌리 내린 조선시대의 경직된 분위기를 풍자한다. 내로라하는 문장실력으로 음탕하고 난잡한 성행위를 생생하게 묘사하며 순식간에 야설계의 스타로 등극한 주인공 김윤서와 더불어 의금부 도사에서 삽화작가로 변신한 이광헌, 편집장 역할을 하는 황가, 제작을 맡은 필사장이와 모사장이가 보여주는 환상의 팀플레이는 야설에 대한 철학에서부터 창작의 고통, 마감에 대한 고충까지 한 권의 야설이 탄생하기까지의 피땀 어린 과정을 익살스럽게 전달한다.
만약 애정신을 연기해야 할 남녀 배우가 서로 얼굴도 쳐다보기 싫어하는 앙숙이라면 어떻게 될까. 까뜨린느 브레야 감독은 <섹스 이즈 코메디>를 통해 난관에 봉착한 베드신 촬영장으로 안내한다. <섹스 이즈 코메디>는 ‘브레야 감독의 전작 <팻 걸>(Fat Girl, 2000) 중 언니의 섹스신을 촬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팻 걸>에서 언니가 휴가지에서 만난 남자와 첫경험을 하게 되는 장면은 사춘기 소녀의 복잡하고 모호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그런데 감독은 <섹스 이즈 코메디>를 통해 섹스신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우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저 미모가 빼어나서 캐스팅한 어린 남녀 배우들은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워 연기를 망친다. 춥다고 계속 담요를 두르는가 하면, 양말만큼은 절대 벗지 않겠다고 뻗대고, 성기를 노출하기 싫다며 우스꽝스러운 모조 성기를 달고 카메라 앞에 선다. 감독은 앙탈 부리는 어린 배우들을 어르느라 진을 빼면서도 어떻게든 그럴싸한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전전긍긍한다(영화 속 감독의 입을 빌어 까뜨린느 브레야는 자신이 <팻 걸>에서 사춘기 소녀의 성에 대한 호기심과 복잡한 심리를 나타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슬쩍 고백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섹스신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가장 은밀하고 자극적인 영역으로서 관객을 가장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섹스 이즈 코메디>는 환상의 영역에 머물기 쉬운 섹스신의 ‘깨는’ 촬영기를 통해 섹스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허탈하게 만드는 지에 대해 말한다. 그야말로 섹스는 코미디다. 정미래 기자(FIL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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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터앤미디어의 생각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어둡고 은밀한 곳을 벗어난 섹스 코미디는 짜릿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보다 밝고 쾌활한 재미를 자아낸다. 적당히 외설적이면서 유머러스함과 갸륵함까지 챙긴 섹스 코미디는 그동안 우리를 어떻게 유혹해왔을까. <야하게 웃겨드림 - '아메리칸 파이'부터 '음란서생'까지>
2010/09/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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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파이 재미있게 봤었는데요. ㅋㅋ
2010/09/03 12:44마지막 한 줄의 '섹스는 코미다' )b
아메리칸 파이 명작이죠
2010/09/03 2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