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 지구 정복의 야심 정도는 품어볼 만도 하다. 그런데 초인(강동원)은 지독히 무기력하고 외로운 초능력자다. 그 대단한 재주로 고작 한다는 게 전당포에서 현금을 훔쳐서는 호텔에 틀어박히는 거다. 그에게 초능력은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것이다. 초인은 악당이 되고 싶지도, 그렇다고 영웅이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비범함을 최대한 숨기면서 아무렇지 않게 범인(凡人)들과 섞여 살길 원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규남(고수)을 만나면서 초인의 삶은 변화된다. 자신이 초능력자라는 사실을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동자 규남의 보잘 것 없는 삶 역시 초인을 만나면서 파괴된다. 평범한 줄 알고 살아왔던 규남과 평범한 척하고 살아왔던 초인. 둘은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고부터 세상에서 가장 비범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초인은 어쩔 수 없이 악당이 된다. 그리고 규남은 얼떨결에 악당을 저지할 영웅 노릇을 해야 한다.
평범하지 않다는 건 얼마나 고독한가. 두 사람은 결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적대관계이면서도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다. 규남과 초인은 단순히 영웅과 악인,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재단될 수 없는,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해가는 관계로 그려진다. 그들의 대결 아닌 대결은 그래서 더 처연하다. 강동원과 고수의 조화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렬하다. 차갑고 절제된 강동원과 열정적이고 생동적인 고수의 연기가 충돌하며 굉장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특히 고수는 과연 얼마만큼 틀을 깨고 발전할 수 있는 배우인지 한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열연을 펼친다.
한편으로 영화는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이용해 유연하게 현실을 풍자한다. 초인의 초능력을 재앙처럼 여기고 억누르려 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개성을 묵살하는 획일화된 사회를 반영하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초인과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받는 자들을 어루만지며, 스스로 악행을 저지르면서 규남에게 “이게 다 너 때문이라”며 계속 책임을 떠맡기는 초인의 행동을 통해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몰지각한 인간들을 은유적으로 비꼰다.
또한 <초능력자>는 극히 현실적이고 생활밀착적인 수퍼히어로 무비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거 없지만 낙천적인 성격과 끈질긴 생명력으로 굳세게 살아가는 열혈청년 규남은 지금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영웅상일지도 모른다. 초능력 그 이상, 그 이면의 이야기로 비범하고 재기발랄한 데뷔작을 내놓은 김민석 감독은 역시 지금 충무로가 가장 필요로 하는 새로운 연출가다.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이 나왔다. 정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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