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도둑질, 촛불 대신 카메라를 들다
촛불집회에 촛불 대신 카메라를 들고 나갔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처음에는 촛불을 들었어요. 제가 요즘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10주년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거든요. 등장인물들이 촛불집회에 나가는 거예요. 저는 그들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든 거고요. 촛불집회를 찍기 보다는 등장인물을 촬영한 거죠. 그러던 와중에 현장 생중계 하는 '참세상'하고 '칼라TV'에서 사람 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도와주게 됐어요.
'참세상'하고 '칼라TV' 분들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처음 칼라TV는 두 명이 중심이 돼서 시작했어요. 한 명은 한독협 다큐멘터리분과에 있는 김일환 감독이에요. <리니지>라는 작품을 만드신 분. 다른 한 명은 칼라TV에서 프로듀서로 계신 조대희 PD고요. 그분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서 홍콩에서 열린 WTO 반대원정투쟁 뮤직비디오 만들었던 분이에요. 우연히 본 거죠. 사람 없는데 도와줄 수 있냐 해서 시작했어요.
감독님도 지금 작품을 만들고 있어서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어요.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인원수 늘리는 것 정도?(웃음) 그리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니까 현장 생중계를 한 거죠. 저희가 현장 중계를 직접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이번 촛불집회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미칠 수 있었던 데는 생중계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요. 촬영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초반에는 사람들도 잘 몰랐던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느새 다 알더라고요. 처음 중계를 시작할 때면 ‘저게 뭐지’ 했던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카메라와 노트북 지나가면 “어디서 나왔어요” 물어보기도 하고. 참세상, 칼라TV를 다 알더라고요. 저도 '아프리카' 보지 않았는데 생중계를 통해 처음 봤어요. 특히 젊은 층은 대부분 잘 아는 거 같아요. 제가 봐도 신기해요. 이렇게 찍힌 게 어떻게 바로바로 보일까. 또 사람들이 예상 외로 많이 보는구나 싶어 신기했죠.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감독님 입장에서 변화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고민이 있었을 거 같아요.
일단 특별히 뭐가 달라진 거 같지는 않아요. 다큐멘터리와 미디어는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영역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장 생중계가 자유롭게 되는 게 좋았어요. 몇 년 전 한미무역자유협정(이하 한미FTA) 반대 투쟁할 때 한독협에서 실천단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고 생중계도 했었는데, 본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그때 미디어활동가나 다큐멘터리 감독이 현장에서 찍은 동영상을 편집해서 올리곤 했는데 이제 그 일을 우리가 안 해도 되는 거죠. 굉장히 긍정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러면서 우리의 역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죠. 말하자면 촛불 정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뭘까 하는 거. 근데 며칠 전 인터넷에 <쥐코>라는 25분짜리 동영상이 떴었어요. 미국 유학생이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를 모아 만든 건데 이명박 정부의 행태가 얼마나 어이없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영상이죠. 이걸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봤더라고요. 그걸 보고 느낀 게 바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현장 중계와는 또 다르게 사건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갖고도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모든 사람이 촛불집회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우습잖아요. 관심 영역은 다르다고 하지만 사회적 이슈는 늘 존재하고 있으니까. 아직 우리들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데가 많아요.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크게 바뀌지 않을 거 같아요.
이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저는 이번 생중계를 보면서 독립 다큐멘터리가 사람들에게 친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독립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중요성이나 재미, 감동은 분명 있는데 낯설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안 봤잖아요. 이제 좀 친숙해 졌으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좀 가질 것 같은데.
어, 그런 생각까지는 안 해봤는데.(웃음)
아, 네...(민망한 웃음) 현장에는 며칠 있었나요?
초반에는 그리 많이 가지 않았어요. 첫날 도로로 나와서 밤을 새우던 날, 저는 아는 시민단체에서 모금행사에서 술 한 잔 하고 집에 걸어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예요.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뭔가 하고 보다가 "앉았다 가지 뭐"하고 주저앉았어요. 두세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까,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대책위에서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거리 행진이 있으니까 지금 해산하죠”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우~ 우~” 하면서 야유하는 거에요. 아, 이거 쉽게 안 끝나겠구나. 그날 새벽까지 있다가 연행될 뻔 했다가 안 잡혀가고, 다음날에도 신촌까지 갔다가 연행될 뻔 했다가 안 잡혀가고. 그러다가 칼라TV 생중계 자원활동을 했어요.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봤을 텐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와, 대단하다. 다들 직장이든, 학교든 자기 생활이 있는데, 참 집에 안 가는구나. 저 같은 경우 예전에 집회 여기저기 다녀봐서 아는데 사실 형식적인 게 많아요. 틀도 똑같고 재미도 하나 없어요. 무대 쳐다 보고 행진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가지 말아야지 했어요. 그에 비해 촛불집회는 신선하고 재밌어요. 밤을 새워도 힘들단 생각이 안 들어요.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반응들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거부감도 없고. 미디어나 카메라에 무척 익숙해진 거 같아요. 지금은 휴대폰 카메라로도 찍고 올리고 하니까. 찍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저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게 ‘참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미FTA 할 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쉽죠. 왜 그땐 안됐을까.
그게 조중동의 힘 같아요. 그 땐 시위대가 폭력집단으로 묘사됐으니까요. 하지만 말그대로 살기 위해서 나온 건데.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할 때 지금과 같은 분위기였다면 많이 달라졌을 거 같아요. 한미FTA나 비정규직 법안 등이요.
긍정적인 내용이 나왔겠죠. 희망이라던 게 조금은 있을 수 있었겠죠. 바뀔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도.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가 2006년 봄에 나왔는데 그 땐 계속 깨졌어요. 한미FTA는 협상 중이었는데도 지지를 받지 못했고. 그래도 아쉽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되는 거 보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걸어본 사람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월드컵 때보다 더 그렇죠.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치가 무엇이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현장에서 피부로 절감했을 거예요. 한국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같은 체제가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지금의 이 세대가 자라고 시간이 지나면 굉장히 큰 힘이 되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요. 386세대가 자식을 데리고 나왔다는 해석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386세대가 갖는 힘보다도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해요.
카메라를 들고, 홍해를 건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 있었나요.
물대포를 쏘던 날이었어요. 그날 최진성 감독을 찍고 있는데, 밤을 꼬박 새우게 된 거에요. 광화문에서 안국동 사거리까지 밀리고 특공대가 투입되는 상황이었는데 저는 작은 카메라 들고 있었죠. 인도에 있는 사람들을 포위하더니 연행을 하는 거에요. 난 그 광경을 찍고 있는데, 전경 한 명이 오더니 “기자십니까” 묻는 거예요. “아닌데요.” “그럼 누구세요?” “다큐멘터리 찍는 사람인데요.” 하니까 갸우뚱 하더니 그냥 가는 거에요. 속으로 ‘또 연행될 뻔 했구나’ 싶더라고요. 카메라가 없었으면 연행됐을 거에요. 칼라TV 생중계 할 때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기니까 사람들이 배려를 해주더라고요. 사람들은 많고, 앞으로 가야하는 상황에서 “죄송합니다. 칼라TV입니다” 말했더니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양쪽으로 쫙 비켜주는 거예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은근 짜릿하기도 하고.(웃음) 생중계를 할 때 'PRESS' 딱지 차니까 전경들이 진압 중에도 그 사이를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도 있더라고요.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불가능했던 일이죠. 기자증 없으면 절대 못 들어갔는데.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이거 치사하고 더러워서 가짜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죠.(웃음)
예전에 동아일보 사옥에서 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 연행됐었잖아요.
한미FTA 협상 한창 진행될 때 그랬죠. “기자냐” 하길래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했더니 “연행해” 했다지요. 그때 경찰청 앞에서 항의시위도 했는데 꿈쩍을 안 하더라고요.
역시 사람이 제일 센 거 같아요. 뒤에 딱 받치고 있으면 든든하잖아요.(웃음) 촬영을 하면서 촛불집회가 변화되는 모습들을 보셨나요.
시기에 따라서 다른 거 같아요. 10일까지는 일반인들이 많이 참가했죠. 그 이후에는 조직된 단체나 노조나 많이 오는 거 같아요. 집회 분위기도 일반인들이 있을 때와 조직화 된 사람들이 있을 때가 달라요. 평일 낮에 참세상 중계를 하러 갔어요. 일반인들은 별로 없었는데 찍으면서도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참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보수단체와 충돌하면 어쩌나 무섭기까지 했어요.
유도한 거잖아요. 양측의 충돌을 만들어서 정국을 역전하려고 했으나, 실패했죠. 사람들이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니까. 일종의 학습효과죠.(웃음)
이런 농담이 있잖아요. 이명박 정부가 잘한 건 없지만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가르쳐주고 있다고.(웃음) 제가 말해놓고도 씁쓸하네요.
그렇죠.
10일에는 언제까지 계셨나요.
'명박산성' 앞에서 스티로폼 쌓고 그럴 때였죠. 그게 4,5시쯤 됐을 거 같은데. 사람들이 싸우고 논쟁하는데 진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광화문대로에서 어떻게 할 거냐 논쟁하는 광경은 그동안 볼 수 없는 모습이었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얘기하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사실 넘어가서 뭐하겠어요. 전경들 많을 테고, 연행하겠죠. 물론 상징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넘어갈 수 있지만 안 넘어간다는 걸 보여주는 게 더 효과가 컸던 거 같아요.
전 그날 해 뜰 때까지 있었어요. 경찰 쪽에서 한 여경이 방송을 하는 거예요. "시간 늦었다고 자진해산하라"고. 근데 사람들이 "노래해~ 노래해~"를 연호하는 거예요. 진짜 웃겼죠. 사람들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자연스럽고 유연한 거예요.
386세대 출신의 어떤 사람이 그런 얘기를 했대요. 촛불집회 초반 젊은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저 쪽에 흰색 운동화를 신은, ‘체포조’의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대요. 갑자기 이 사람이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면서, 자긴 못하겠다고 했대요. 트라우마죠. 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 집회를 참석했던 사람들은 전경이나 체포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워낙 호되게 당해서 공포감이 잔존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공포를 느끼지 않아요.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은 경찰일 뿐이고, 누군가의 친구일 수 있다는 생각. 무섭지 않으니까 그런 게 극복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과격해졌을 거에요. 졌어도 진작 졌고, 박살이 나도 진작에 났죠. 화낼 타이밍에 비꼬고 조롱하고. 닭장차에 올라가면 “춤춰~ 춤춰~”하고. 옛날 같았으면 뭐 집어던지고 했을 거에요. 우리 부모 세대는 국가에서 시키면 무조건 했던 세대고, 386세대는 민주화 투쟁을 경험하면서 국가와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 거고. 그리고 지금은 한 발 더 나아간 거죠.
사람 속에서 심장 속 떨림을 느끼다
근데 이게 언제까지 갈까요.
저도 보면서 언제까지 갈까 생각해 봐요. 김종훈이 한국에 돌아와서 추가협상 내용 방향을 발표하면 그게 큰 분수령이 될 거 같아요. 근데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는 거죠. 이번 협상에서 중요한 게 미 정부가 보증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인데, 사실 그게 직접적인 관심사는 아니잖아요.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죠. 사람들은 지금 조중동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한 달 넘게 광화문 길바닥에 있으면서 조중동 문제를 심각하게 느낀 거에요. 기사를 보면 황당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제는 자기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 거죠. 예전부터 조중동 문제를 지적한 사람들은 많았죠. 그런데 그게 이번에 아주 자연스레 공론화 된 거죠. 언론을 지켜야 한다고. 이렇게 의제가 확장되는 것을 보면 앞으로 동력은 떨어지겠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굉장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이제 정부가 몇몇 부문에 대해 민영화 안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이제 ‘명박 스타일’을 워낙 잘 알아서 만약 잘못된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해도 그대로 따르지만은 않을 거에요.
이번 촛불집회를 보면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하나의 이유로 모였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는 거에요.
현장 생중계를 한 뒤에 보면 댓글이 장난 아니게 달린 걸 볼 수 있어요. 즉각적이에요. 우리 같은 경우는 그렇게 못하겠죠. 댓글도 하나 잘 못 다는데.(웃음) 젊은 친구들은 정말 빨라요. 분노가 아니라 풍자하고 조롱하는 거죠. 어떤 토론회에 그런 얘기가 나왔더라고요. 피켓 구호를 보면 젊은이들이 어떻게 자기를 표현하는지 알 수 있다고. 그 친구들은 구호나 사진, 댓글 등 자신들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소통해요. 그런 식으로 촛불집회가 시작됐고, 그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이 아닌가 해요.
이번 촛불집회가 많은 사회적인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감독님 개인에게도 뭔가 새로운 느낌을 줬을 거 같아요.
청와대 근처 갔을 땐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5.18광주민주항쟁 소설이나 자료를 보면서 느꼈었던 감정이 떠올랐어요. 그 때 그분들이 느낀 감정을 내가 여기서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너와 내가 떨어져 있지만 우리라는 이름 안에 함께할 수 있다는 감동. 그래서 도청에서 끝까지 총을 들고 싸울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곧 헤어지겠지만, 광화문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여기 모인 사람들과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기억은 굉장히 오래 남을 거 같아요.
저도 사람들하고 같이 걸어가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를 들으면서 울컥하더라고요. 노래 잘 만든 거 같아요.
올해 최고의 히트곡이죠.
누가 만들었는지 아세요?
작곡가 윤민석 씨가 만들었을 거예요. 전대협 진군가 만들고, 효순,미선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죽었을 때도 노래를 만드셨던 분이죠. 예전에 민중가요 쪽에서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예요. 안효원 기자 (FILMON)
‘이마리오 감독 인터뷰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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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하면 인터넷방송이나 일반 언론만 있는 줄 알았더니
2008/06/24 14:16저런 다큐멘터리를 찍으시는 분들도 계시군요 : ) 잘 읽고 갑니다.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좋은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요즘 맹활약 하시는군요^^
2008/06/24 19:54매우 훌륭한 인터뷰와 현장 기사, 잘 읽었습니다. 역시 에너지 넘치는 젊은 기자들이 포진한 FILMON의 저력이 묻어 나는 포스트였습니다. 설경구한테 촛불 들려 사진 찍거나 선구자삘에 취한 기자 개인의 체험담을 늘어 놓는 위선적 영화 저널들보다 백배 저널답습니다. 항상 이처럼 진정성 넘치는 건필을 기원합니다.
2008/06/25 01:02